밀가루 담합에 역대 최대 과징금, 왜 이번 사건이 유독 크게 다가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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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물가를 건드린 담합, 체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가끔 장을 보다가도 느끼는 게 있다. 같은 밀가루인데도 왜 이렇게 가격이 민감하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그 뒤에 누가 움직였는지가 궁금해진다. 이번 밀가루 담합 사건은 그런 의문에 꽤 직접적인 답을 던진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사조동아원, 대한제분, CJ제일제당 등 7개 제분사의 담합을 적발해 총 6710억4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다. 담합 사건 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실제로 이 사건은 단순한 기업 간 가격 합의 수준으로 보기 어렵다. 라면, 빵, 과자처럼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제품의 원재료가 밀가루이고, 밀가루 시장은 B2B 기준으로 7개사가 사실상 과점 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다. 시장점유율이 87.7%에 달했다는 점만 봐도, 한 번 가격이 흔들리면 파급력이 적지 않다. 나처럼 혼자 장을 보고 식비를 체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런 담합이 꽤 현실적인 문제로 읽힌다.

공정위가 본 이번 사건의 무게

공정위는 이번 담합을 가볍게 보지 않았다. 조사 착수 후 약 7개월 만에 제재 절차에 들어갔고, 이미 지난 1월에는 담합에 가담한 임직원 14명에 대해 고발 조치도 마쳤다. 단순히 과징금만 물리는 방식이 아니라, 시장 질서를 다시 세우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특히 공정위가 이번에 검토한 조치는 과징금만이 아니다. 담합으로 왜곡된 가격을 다시 정상 수준으로 돌리기 위한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이 포함됐다. 이 조치는 담합 이전 수준으로 가격을 재산정하도록 하는 시정명령이다. 2006년 밀가루 담합 이후 20년 만에 다시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사실 이런 제도는 숫자보다도 메시지가 더 강하다. “담합으로 올린 값은 그대로 두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6년에 걸친 합의, 그리고 24차례의 움직임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담합은 2019년 1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약 6년에 걸쳐 이어졌다. 대형 수요처를 상대로 한 공급가격·물량 담합이 19차례, 중소형 수요처와 대리점 등 전 거래처를 대상으로 한 공급가격 담합이 5차례, 합계 24차례에 이른다. 이 정도면 우발적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인 공동행위로 보는 게 맞다.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회합의 방식이다. 총 55회에 걸쳐 대표자급과 실무자급 회합이 따로 진행됐다. 영업본부장 이상이 큰 틀의 방향을 잡고, 영업팀장 등 실무자급이 세부 내용을 맞추는 식이었다고 한다. 이런 방식은 담합이 얼마나 체계적으로 작동했는지를 보여준다. 겉으로는 각자 영업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격과 물량이 어느 정도 정렬돼 있었던 셈이다.

“시장점유율 90%에 이르는 제분사들이 약 6년에 걸쳐 은밀하게 실행한 담합을 적발해 제재했다는 데 의의가 있겠습니다.”

원가 상승기와 하락기,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가격

이번 사건이 더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가격 조정의 방향 때문이다. 밀가루의 원재료인 원맥은 사실상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데,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원맥 시세가 오르는 시기에는 원가 상승분을 빠르게 가격에 반영하려 했다고 공정위는 봤다. 반대로 2023년 이후 원가가 내려가는 국면에서는 하락분 반영을 늦췄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소비자 입장에서 꽤 익숙한 패턴이다. 오를 때는 재빨리 오르고, 내릴 때는 느리게 내려간다. 그래서 물가 체감이 더 나빠진다. 공정위에 따르면 담합이 시작된 2019년 12월과 비교해 2022년 9월 밀가루 판매가격은 제분사별로 약 38%에서 최대 74%까지 상승했다. 같은 시장, 같은 원재료인데도 상승폭이 이렇게 크게 벌어졌다는 사실은 공동행위의 영향력을 짐작하게 한다.

📊 담합 시작 시점 대비 2022년 9월 가격 상승률

제분사별 최소 상승률 ■■■■■■■■■■■■■■ 38%
제분사별 최대 상승률 ■■■■■■■■■■■■■■■■■■■■■■■■■■■■■■■ 74%

또 공정위는 담합에 가담한 상위 3개사와 하위 3개사 모두 공동행위 이전보다 영업이익률이 개선됐다고 봤다. 이 부분이 중요하다. 담합은 단순히 “같이 올렸다”는 사실보다, 그 결과 누가 이익을 봤는지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시장에서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였고, 그 과정에서 기업들의 수익성도 좋아졌다면 소비자 부담이 누적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과징금 6710억,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재발 방지

공정위가 부과한 6710억4500만원은 역대 최대 규모지만, 핵심은 숫자 자체에만 있지 않다. 공정위는 관련 매출액을 약 5조6900억원으로 산정했다. 법 위반이 중대하다고 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2006년에도 한 차례 제재를 받았던 업체들이 다시 담합을 했다는 점은 제재의 실효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이번 조치에는 독자적 가격재결정 명령 외에도 향후 3년간 밀가루 가격 변경 현황을 연 2회 서면 보고하는 가격 변경내역 보고명령이 포함됐다. 나는 이런 후속 조치가 꽤 중요하다고 본다. 과징금은 한 번 부과하면 끝이지만, 보고명령은 그 이후의 행동을 계속 들여다보게 만든다. 담합이 반복되기 쉬운 업종일수록 이런 감시 장치가 필요하다.

공정위가 이번 사건을 빠르게 처리한 점도 눈에 띈다. 통상 담합 사건은 조사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이번에는 조사 착수 후 약 7개월 만에 제재 절차로 넘어갔다. 민생 물가가 민감한 시기였던 만큼, 대응 속도 자체가 메시지였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도 밀가루 담합을 두고 “시장 신뢰를 훼손하며 국민 경제 발전을 방해하는 암적 존재”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표현은 강했지만, 현장에서 느껴지는 체감 물가는 그만큼 민감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식탁 물가를 바꾸는 건 결국 보이지 않는 가격 질서다

밀가루는 단독으로 소비되는 상품이 아니다. 라면, 빵, 과자, 국수처럼 여러 가공식품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제분사들의 가격 결정은 곧바로 제빵·제과·제면업체의 원가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원가가 올라가면 소비자 가격도 뒤따라간다. 우리가 마트에서 느끼는 몇 백 원, 몇 천 원의 차이는 사실 이런 구조의 끝단에서 발생한 결과일 수 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나는 시장의 기본 원칙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경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가격은 효율적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특히 국민 생활과 직접 맞닿아 있는 품목일수록 담합의 후폭풍은 더 크다. 공정위가 이번에 강한 제재를 꺼내든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다고 본다. 시장은 결국 신뢰로 굴러가는데, 그 신뢰를 무너뜨린 대가가 너무 가벼우면 같은 일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건 전원회의 심의 결과다. 법 위반 여부와 제재 수위는 최종적으로 그 절차를 거쳐 확정된다. 다만 이번 사건만큼은 이미 하나의 분명한 경고가 됐다. 생활물가를 건드리는 담합은 더 이상 “업계 관행”으로 넘어갈 수 없다는 점, 그 선이 예전보다 훨씬 또렷해졌다는 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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